국일암은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고 중건한 기록만 전해진다. 부휴선수(浮休善修, 1543~1615) 대사의 문하인 벽암각성
(碧巖覺性, 1575-1660) 대사가 이곳에 오래 주석하면서 인조 15년(1637년)에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국일암 본당 건물은 인법당과 조사당으로 구성된 건물로, ‘벽암당’이란 현액이 달린 조사당은 1780년 벽암각성의 5세
문손인 운파(雲波) 스님이 각성 스님의 진영을 새로 조성할 때 옛 감실을 철거하고 10여 발짝 앞으로 내어 증축한 것이다.
암자 이름이 국일(國一)인 것은 임금이 내린 시호이기 때문이고, 이곳에 영정(影㡠)을 봉안한 것은 이곳이
존자가 오래 머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감(影龕)이 흐릿해져 우러러 예배하는 이들이 안타깝게 여겼다.
다행히 올봄 문손(門孫)인 운파(雲波)가 떨치고 일어나 옛 감실을 철거하고 10여 발짝 앞으로 내어 별도로 그려
영정을 옮기니, 멀리서 바라보면 황홀하게 존자가 다시 살아난 듯하였다. ……
지금은 다만 운파가 영감을 개수한 정성을 간략하게 써서 감실 머리에 건다.
-해봉 유기(海峯 有機), ｢벽암존자영감기(碧巖尊者影龕記)｣, ｢호은집(好隱集)｣권4( ｢한불전｣9, 727a쪽.)
도량 입구에 나란히 서 있는 부휴 스님, 고한 스님, 벽암 스님의 부도도 이곳이 세 분 조사스님들의 제향을 모신 도량임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조사전에 모셔진 벽암각성 문손들의 조사 영정은 벽암각성의 문도들이 대대로 국일암에 주석했음을 보여준다.
국일암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문집에 수록된 시와 산수유기 속에도 간간히 등장하고 있다. 송영로의 문집 <면암집>
에는 해인사 유람시 희랑대, 백련암을 거쳐 국일암을 유람하며 쓴 <국일암>이란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최해두의 <우계집>에는 “제국일암벽상”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변영규의 <효산집>에는 ‘중과가야산국일암(다시 가야산 국일암을 지나며‘
)
라는 시가 서문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 등 국일암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아래의 시는 조선후기 홍문관제학, 대제학,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황경원(黃景源, 1709(숙종 35) ~ 1787(정조 11))이 1761년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1762년 합천으로 이송되었을 때 해인사를 유람하며 쓴 시다. 이 때 지은 시로 <國一庵>외에 <宿海印寺(해인사에 머물다)>, <장경각(藏經閣)>이 있다.
국일암(國一庵)
한낮에 깊은 산골짜기를 돌아다니며 (亭午循幽壑)
절집을 소요하였네 (逍遙釋氏宮)
담쟁이덩굴 자욱한 숲 속 외로운 풍경 소리 멀리 퍼지고 (煙蘿孤磬遠)
구름 낀 숲 속엔 온 시내가 텅 비었네 (雲木一谿空)
스님을 따르는 석장(錫杖) 그림자 청정하고 (錫影隨僧淨)
등잔 불빛 부처와 통하네 (燈光與佛通)
‘안평’이란 필묵이 뛰어나고 (安平有墨妙)
자줏빛 상서로운 기운 감실에서 새어나오네 (紫氣出龕中)
황경원 <강한집(江漢集) 제2권>
* 위의 번역은 2014년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박재금 이은영 홍학희의 번역을 명법스님이 수정한 것이다.
19세기 이후 국일암의 역사는 당시 조성된 탱화의 화기와 1909년 발행된 「해인역사(海印歷史)」를 통해 추적할 수 있다. 1885년 고종22년에는 해훈(海訓) 비구니 스님이 화주하여 후불탱화인 <구품도>를 조성하였고 도감 겸 별좌인 야은(倻隱) 폐렴 공(敝濂公)이 <신중탱>을 조성하고 불상을 다시 도금하였다. 1892년 고종29년 5월, 해훈 비구니스님이 <칠성도> 를 조성하고 <이곡당효선 진영> ,
, <동림당 혜원 진영> , <율파당 유징 진영>을 새로 그렸으며(고령 관음사 <칠성도> 화기 및 진영 묵서), 1895년 고종32년 3월에는
국일암 영당을 중수하였다. 1896년 고종 33년 1월에 예봉(禮峰 平信, 1819-1896) 화상이 논밭 6두락을 국일암에 헌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국일암에는 비구니 강원이 개설되었는데, 비록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는 형식으로 보이지만 여성 출가자를 위한 최초의 교육기관이 개설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국일암 강원은 1918년 개원한 통도사 옥련암 비구니 강원보다 이른 시기인 1913년 경 개원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초의 비구니
전계사인 정행 스님은 7세에 불문에 들어와 삼선암 성학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여 비구니 강원인 국일암에서 비구니 강사 강유겸
스님에게 이력을 보았다고 하며(운문회보 5호, 1983년) 비구니 3대 강백 중 한 사람인 정암혜옥스님(1901~1969)이 국일암에서
사집과를 이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혜월성문(1893~1974) 스님은 “20세에 구족계를 수지하고 국일암에 계시던
타불 스님에게 대교과를 마쳤다.”(『한국 비구니의 수행과 삶』1. pp.51-52.)
1926년 11월에 발행된 『佛敎』 제29호에 실린 “白景霞氏(백경하씨)는 당사 산내말사인 국일암이 무너져 오래 틈이 새고 公財(공재)에 여력이 없어 수선치 못함을 개탄하고 그해 일신 수선하고 의무로써 가람 수호에 진력하는 중이더라.”라는 기사를 통해 국일암 법당 건물의 중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40년 국일암 감원(監院)으로 장일( 長一, 1916~1997) 비구니 스님이 주석하였으며, 1942년에 해인사 주지를 역임 했던 경하(景霞) 화상이 다시 국일암을 중수한 기록이 남아있다.(『佛敎』 제41호, 1942년) 1944년 대원(大願) 비구니 스님이 처음으로 전문선원을 개설하였으며,정인 스님이 감원으로 주석하며 산신각을 건립하였다. 1947년, 본공(本空) 비구니 스님이 입승으로 국일암에서 5년 동안 수행 정진하였으며(「대법보종창해인사명월당기」), 이 때 비구니 스님들과 재가여성신도가 함께 참선수행한 내용을
종단해 보고한 기록이 현재 전하고 있다.(『기록으로 보는 한국불교와 조계종』, 대한불교조계종 p.27.)
그 후 한동안 수행자의 발길이 끊어져 쓸쓸하던 국일암에 1967년 성원(性源) 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40년 동안
주석하는 동안 쓰러져가는 법당을 보수하고 요사채 및 지장전을 신축하여 도량을 일신하였다. 또한 1967년부터 1982년까지
비구니 선원을 개원 하여 벽졸, 혜해, 혜근, 혜주, 불필 스님 등 20여명이 넘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였으며, 3년 결사를
처음 시작하여 3~5회 실천하였다. 1993년 지장전, 1994년 요사채가 신축되어 현재의 도량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2019년 성원 스님의 제자인 명법 스님이 감원으로 부임하여 국일암 가풍을 이어가
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