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부터 명상수행에 참여하고 있는 미루가 태풍 힌남노가 남해안을 지나간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이틀 전부터 염려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제 아침에는 오토바이까지 날아가는 영상을 보았다며 장독대 묶는 일을 스님 혼자 하기 어려우니 가까이 계신 거사님들에게 부탁해 보라는 메시지를 또 보내 왔다. 딱히 부탁드릴 분이 없다는 내 대답에 급기야 자기라도 돕겠다며 오겠다고 하였다.그 사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추석장을 보러갔다. 서두르는 감이 있었지만 바람이 거세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장을 보고 돌아오니 미루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아침예불을 마치고 어둠도 가시기 전에 바로 나가서 일하자는 걸 진정시키고는 좌선과 아침 공양을 먼저 했다. 아침 공양을 마치자마자 설거지도 미뤄둔 채 미루가 준비해온 그물과 밧줄을 들고 장독대로 나갔다.
내가 공양 준비를 하는 동안 미루가 작은 항아리들을 집안으로 옮겨놓은 덕분에 먼저 중간 정도 크기의 장독들을 간격을 두지 않고 붙이고, 내용물이 들어 있는 장독들은 무거운 돌을 올려 흔들리지 않게 하고, 빈 장독은 물을 채워넣은 후 뚜껑은 벗겨버렸다. 그게 피해가 적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망의 그물 씌우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물과 밧줄로 장독대를 묶으면 될 것 같아 사오라고 부탁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건 이렇게 해볼까, 저건 저렇게 해볼까 함께 궁리하고 의논하다 보니 하나 둘 풀려나갔다.
그물을 덮고 돌로 누른 뒤 밧줄로 그 위를 단단히 동여매었다. 그물 크기가 좀 작아 장독대 전체를 덮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물을 퍼나르고 돌과 공사용 자재를 옮기고, 둘이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이어서 공사 때문에 해체한 저온창고 판넬들을 동여매었다. 지난번 바람에도 넘어졌던 것들이다. 하나는 약하지만 묶으면 단단해진다는 초등학교 때 배움을 떠올리면서 이리저리 꾀를 내어 판넬을 묶었다.
수곽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다 집안으로 들이고, 별이 집 지붕도 다시 팻트병에 물을 담아 눌러주었다. 일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은 외식으로 하려고 나가다보니 큰절 올라가는 길에 수학여행 온 듯한 학생들이 줄을 지어 가고 있었다. 태풍 온다고 아침 내내 우비 입고 비 맞으며 온갖 부산을 다 떨었는데,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우리가 너무 서둔 것일까??
점심을 먹고 돌아온 뒤에는 문틀에 종이를 덧대고 비상시 필요한 식수를 받아두고 덜컹거리는 고방 문도 단단히 묶었다.
서울로 출발하면서 아이는 나머지 문들도 문틀에 종이를 덧대라고 빠진 일들을 당부하였다.
전송하며 돌아오는 길에 동아줄을 묶으며 미루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여자들도 잘 할 수 있다구요!"
그렇다, 서로 도우면 우리도 다 할 수 있다!
최선을 다했으니 태풍도 너의 미래도 기다려보자.
